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지금 이 세계는 실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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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 SF영화로 보는 철학의 물음들 ∥ 조용현 (지은이) | 우물이있는집
이성. 진리. 역사 | 원제 Reason, Truth and History ∥ 힐러리 퍼트넘 (지은이), 김효명 (옮긴이) | 민음사
나무 | 원제 L'Arbre des Possibles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뫼비우스(그림), 이세욱 (옮긴이) | 열린책들

| 들어가며 |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SF 액션 영화가 한 편 나왔다.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워쇼스키(앤디, 래리) 형제 감독이 내 놓은 매트릭스이다.
시리즈 전편을 아울러 이 시리즈 처럼 호평과 혹평이 난무하는 영화도 드물지 싶다.
영화의 흥행과 평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니, 이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포스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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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트릭스 시리즈는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저서 "이성·진리·역사"에 나오는 사상에 철학적 근간을 두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1장에 실려 있는 "통 속의 뇌 Brains in a vat"이라는 논문에 스며 있는 분석철학(퍼트넘의 철학을 '내재적 실재론*'이라고 함)이 그 근저이다.

"통 속의 뇌"에 대한 간추린 얘기는 일전에 좀 깊게 다룬 적이 있으니 페이지 아래의 태그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인 「나무」에 보면 "완전한 은둔자"라는 단편소설이 한 편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힐러리 퍼트넘의 "통속의 뇌"에 철학적 근저를 두고 있다.

"완전한 은둔자"의 내용을 짧게 피력하자면 이렇다.
구스타브 루블레라는 의학박사가 있는데,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들려줬던 말(「네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네가 하는 일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이 마치 불교의 화두처럼 그의 머리 속을 떠돌다가 진짜로 뇌만을 남겨두고, 수 대를 이어서 '생각의 바다'속을 헤매이며, 생각만 하다가 그의 뇌가 그만  …… (스포일러성 문구라서 생략함) 되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어찌보면 허무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아이디어가 너무 쇼킹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겠지만,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철학서를 많이 접해 본 사람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완전한 은둔자"는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의 소설 패러디판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한 철학자가 "상념의 바다" 속을 떠돌다 건져 올린 진주 같은 관념이 전세계인의 감동을 일궈낸 영화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소설로 모습을 바꿔 우리들 곁에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을 보면 새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본의 흐름도 아니고, 대단한 예술가의 예술 작품도 아니라, 힐러리 퍼트넘이나 완전한 은둔자 소설의 구스타브 루블레 처럼 책상머리에 가만히 앉자서 생각의 바다 속을 부유하는 철학자들이라는 생각이들기도 한다.


| 이 세계는 실재하는가? |
이 세계가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수 있을까? 물질문명의 황금기라고 해도 누구 하나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얘기거나 봉창두드리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잘 살아왔고, 잘 살고있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실재'에 대한 문제의 근원을 캐 들어가면 그 근원이랄 수 있는 큰 뿌리를 몇몇 개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알게 모르게 미치고 있는 이름과 맞부딪히게 되는데, 플라톤 Plato이란 인물이며,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실재'에 대한 단 하나의 문제로 평생을 고민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볼수 있다. 플라톤 핵심 사상인 '이데아 론'이 바로 지금 얘기할 화두인 '실재'에 대한 사상의 원뿌리이다. 플라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서양철학의 전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영국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이라 평하였다).

- 이 세상은 그림자다!? : 플라톤의 이데아(Idea) 론과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 사상의 정수 精髓)다. 이데아론을 한마디로 압축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줄여서 설명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는 근본적으로 영원불변하고 비물질적인 본질이고, 우리가 보고 감각하는 현실적, 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이데아의 조악한 모사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깊이 있게 본 사람은 위의 밑줄 친 부분이 예사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을 영화 매트릭스적으로 환원해서 다시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가 보고 감각하는 현실적, 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매트릭스가 만들어 놓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일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 1탄에서 이데아론이 극명하게 그려진 부분이 있다.
매트릭스가 제공한 기나긴 꿈속 세상에서 네오를 끄집어낸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현실과 매트릭스가 만들어 둔 가상의 세계와의 차이점을 얘기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매트릭스의 개념을 설명한 부분이니 집고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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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어스:이게 '컨스트럭트'일세. 로딩 프로그램이지. 뭐든지 로드(load)할 수 있어. 옷이든, 장비든,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필요한 건 모두 다.

네오:프로그램 안이라구요?

모피어스: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도 없어. 머리 모양도 다르고.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네오:진짜가 아닌가요?

모피어스: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게 자네가 아는 세상이야. 바로 20세기 말의 모습이지. 이젠 매트릭스라는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로만 존재하지. 자넨 꿈나라에서 살았었네 네오. 이 세계가 오늘날의 세계야. 환영하네. 여기가 진실의…… 사막이네. 우리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인류는 21세기 초의 어느 시점엔가 스스로 경탄하며 AI의 탄생을 한마음으로 축하했다는 거야.

네오:AI라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모피어스:기계들을 대량 생산해낸 단일 자의식이었지. 우리와 그들(AI에 기반을 둔 기계) 중 누가 먼저 공격했는진 몰라. 다만 인류가 하늘을 불태운 건 확실해. 당시의 기계들은 태양력에 의존했고,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이 없으면 그들은 멸망할 거라고 믿었지.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해 왔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인체는 120볼트 건전지 이상의 전기를 발생하고 체열은 2만 5천 BTU가 넘어. 기계들은 핵융합과 결합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지. 끝도 없이 널린 벌판이야 .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재배되는 거지. 나도 오랫동안 믿지 못 했어. 그러다가 직접 본 거야 죽은 자를 액화시켜 산 자에게 주입하는 걸. 끔찍하리만치 정확한 기계들을 보면서 난 명백한 진실을 깨달았지.
매트릭스가 뭘까?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세계야. 우릴 통제하기 위한 거지. 인간을 이것(건전지)으로 만들려고…….

네오: 아냐! 믿을 수 없어. 불가능해!

모피어스:믿기 쉽다고는 안 했어. 진실이라고만 했지.

네오:그만 해!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 줘!

트리니티:진정해, 네오.

네오
:빨리 뽑아! 뽑아 버려……. 날 만지지 마, 저리 가! 난 안 믿어! 안 믿는다구! 안 믿어

사이퍼:미쳐 가요.

모피어스
:숨을 쉬어, 어서!

… (네오가 기절한 후, 장면 전환) …

네오:다시 돌아갈 순 없죠?

모피어스:그래.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나? ……
(39:31 ~ 44:43)


-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동굴의 우상은 원래 플라톤이 자기 학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말한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그의 대화편 중 '국가'편의 제7장에 소크라테스와 그라우콘이라는 젊은 학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형식으로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몇 사람의 죄수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린시절부터 그 곳에서 발과 목에 사슬에 묶여서 머리를 뒤로 돌릴 수조차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 죄수들은 단지 그들의 전방에 존재하는 벽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이 풀리어 우선 동굴 안에서, 죄수들이 참이라고 바라보았던 벽면의 그림자가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아가 드디어는 햇빛의 실물 세계를 바라보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해 그 자체를 바라보고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다시 그 암흑의 동굴속으로 들어와 동료였던 죄수들에게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모두 그림자의 그림자도 안 되는 형편없는 허위라는 것을 역설하지만, 죄수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나중에는 그들의 사슬을 풀고 그들을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그를 쳐 죽여버리는 결말로 끝나버린다. 이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동굴속의 암흑의 세계를 인간의 감각적 인식의 세계 즉 그림자와 같은 환영의 세계라고 보고 동굴 밖의 광명(빛)의 세계를 예지계, 실재계, 즉 이데아 세계라고 보아 인간의 감각인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려고 든 비유이다.」(출처:김용옥, 1987,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 통나무, 230-231)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는 하나의 가짜상, 즉 본질적인 모습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고 햇빛 아래에서의 모습이 실제 세계 즉, 이데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햇빛속의 모습 또한 진정한 이데아의 가짜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런식으로 플라톤은 이데아와 감각적 인식의 세계를 구별하고 이데아가 여러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이데아의 층은 피라미드처럼 나뉘어서 아래의 이데아는 가장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최상의 이데아를 향해 나아간다고 봤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에서 보듯이 '인식'이란 것은 지극히 상대적이란 사실을 알수 있다. 동굴에 갖혀서 지내던 때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당연히 본질이었지만, 그 동굴의 테두리 바깥에서 바라보게 된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바라봐왔던 세상은 사실은 본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듯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도 사실은 더 큰 테두리에 둘러싸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의 비유를 적용하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현상계는 사실 컴퓨터가 만들어둔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며 가상현실 즉 꿈속 세상인 것이다.

만약 모피어스의 말이 사실이고, 우리가 감각의 인식을 통해서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영화 매트릭스 속에 그려져 있듯이 일종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의해 구축된 꿈속이라면, 혹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와 같이 무언가 알수 없는 테두리 속에 갖힌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당신은 빨간약을 먹고 진실이나 이데아의 세상을 알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파란약을 선택해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꿈속의 일상이나 동굴속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인식'이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의지의 힘으로 얼마든지 또다른 세상(그게 이데아든 또다른 무엇이라고 호명하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의지의 힘으로 현실의 테두리 바깥의 또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혹은 그런 방법이 발견이 되긴 한 것일까? 만일 방법이 있다면 빨간약을 집어 삼킬 용기가 있는가? 난 한 번 끝까지 가 보기로 한다. 가는 거야~  


| 이 세상은 진짜로 매트릭스인가?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우연히 이데아의 세계를 보게 된 죄수의 결말은 죽임을 당한 비극으로 끝났다. 현실세계에서도 죽임을 당할까?

禪수행을 통해, 혹은 인도의 요가 수행을 통해, 또는 알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현상계가 사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죽음(육의 죽음이 아닌 의식 혹은 인식의 죽음)을 당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했다는 사람에 대한 소식은 아직 접해본 적이 없다.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고, 현실(이라고 얘기하는)에 돌아왔던 사이퍼는 동료를 팔아서 다시 매트릭스 속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만일 당신이 어느날 깨달음을 얻고서 이 현실이 사실은 이데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거나, 혹은 신이 꾸는 꿈속 이야기거나, 아무튼 '나'라고 믿어왔던 자아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계속 이 매트릭스 속에서 꾸역꾸역 삶이 계속 되길 희망하는가?


|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는 실재론 |
이 글을 쓰다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며칠 전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한 씬에서 양자역학에서 보는 실재론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이 글이 문득 떠올라서 일단 붙혀둔다. 영화에 나오는 양자역학에 대한 얘기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긴 하지만, 앞으로 이 글을 연결해나갈 제재가 될 듯하여 맛보기로 붙혀두기로 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의 실재론에 대한 깊은 얘기는 차후에 이어가기로 한다.
(첨부일 : 2008/11/12/23:58:10)

아직 정리가 덜 돼서 여기 까지만 새겨둠.
계속…….


정리가 끝나는 시점에 덧글 금지를 풀겠습니다. 정리중인 글에 덧글 달리면 안될 것 같아서 덧글 금지해뒀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책 한권 정도는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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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관련서적]

-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 매트릭스의 철학 매트릭스의 과학 ∥ 글렌 예페스 (엮은이), 민병직, 이수영 (옮긴이) | 굿모닝미디어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슬라보예 지젝, 윌리엄 어윈 (지은이), 이운경 (옮긴이) | 한문화
-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 ∥ 오윤희 (지은이) | 호미
- 음악과 매트릭스 ∥ 윤성원 (지은이) | 세종출판사(이길안)
-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 김범인, 김시천, 박영욱, 심혜련, 이영의, 이정우, 조광제 (지은이) |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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