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1일 수요일

사람은 날 때부터 이미 완성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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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공'이라 부르는 것도 그것이 목표가 될 수는 있고,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했다고 하여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을 쳐다보며 오르지만 계곡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부터는 자신의 발 앞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정상이란 神에게 묵념이라도 드리는 자세이다.

삶을 옳바르게 영위해나가기 위해서는 뭔가를 이뤄 보려는 욕망이라면 욕망이랄 수 있는 목표의식이 필수요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의식이 도리어 삶의 독소가 되기도 한다. '과욕'을 내면 그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재차 되뇌이지만 '사람은 날 때부터 이미 완성된 존재이다!'
이런 표현을 쓴다하여 '목표의식', '욕망'을 지금 당장 버리고 살자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이미 완성된 존재!'라는 명제의 내포된 뜻은 삶에 지쳤을 때 새로운 활력소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뭔가를 열심히 하여 성취했다면 자신만이 특출한 능력을 갖춰서 이룬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어느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서 남보다 조금 일찍 지름길을 발견한 것 뿐이리라.

흔히 이른 나이에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한 분들의 노년의 자서전이나 대담을 보면 공통분모처럼 나오는 얘기가 있다.
"돌이켜보면 자신은 놓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분들이 놓쳤다고 말하는 것은 현재 자신에게 없는 것이거나 부족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 놓친 것들의 목록에 물질적인 것은 전혀 없다시피 하고, 대부분이 추상적인 그래서 정신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시간'과 연관지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이 글의 화제로 제시한 '사람은 날 때부터 이미 완성된 존재이다.'가 참이라면, 이미 완성된 존재로서 세상에 와서 할 일이라곤 "시간(인생이라는 한정된)"을 운영해나가는 것이리라.

글의 말미에서 언뜻 생각하니
영어 명언 "Time is gold."의 내재된 뜻을 굳이 줄줄이 풀이해놓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17세기 신비주의 시인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케루빔의 방랑자'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이 세상이 끝날 때
그대가 성취한 모든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하여 그대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되어
이 세상을 초월한다.

출처:프레데릭 프랑크 作 '태어나기 전의 나는 누구인가'


| 너스레 |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먼 후일 죽음의 천사 사마엘이 날 맞으러 오는 그날까지도 나는
몰랐었고, 모르고, 모를 것이다.
시간이 무엇이며, 시간의 神(Cronos*)이 어떻게 人生을 운영하는지를…….

* 시간의 神인 크로노스 Cronos는 뒷머리가 없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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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올림포스 신전에는 시간의 神인 크로노스 Cronos의 신상이 있었다. 이 신상은 벌거숭이 젊은이가 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발에는 날개가 있고,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으며, 이마에는 곱슬 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지만, 뒷머리와 목덜미는 민숭민숭한 모습이었다. 기괴한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그 아래에 시인 포세이디프가 노래한 것을 읽으면 우리는 엄숙해 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쉼 없이 달려야 하니 발에 날개가 있고.
시간은 창 끝보다 날카롭기에 오른손에 칼을 잡았고.
시간은 만나는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앞이마에 머리칼이 있으나.
그러나 시간은 지난 후에는 누구도 잡을 수 없도록 뒷 머리칼이 없다.
-시인 포세이디프 Poseidipp 作-

시간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절대자의 섭리이다. 시간은 인간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계획에 따라서 움직인다.
(초중성당 주임신부 김훈일 신부님의 글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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