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5일 목요일

생명이란 무엇인가? - DNA 발견 이후 다시 쓰는 진화론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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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발견 이후 다시 쓰는 진화론

ㆍ원제목:What Is Life?
ㆍ지은이: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공저)
ㆍ옮긴이:황현숙
ㆍ책가격:13,000원
ㆍ출판사:지호
ㆍ출간일:1999년 2월 26일
ㆍ책크기:210*148mm (A5)
ㆍ페이지:376쪽
ㆍISBN(13):9788986270280
ㆍ출판상태:절판


| 책 소개 |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이 먹고 먹히는 관계, 이기고 지는 관계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발전해 나가는 원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을 쓴 마굴리스와 공동저자인 도리언 세이건(린의 아들) 등은 생명체가 서로 배척하기보다 오히려 공생하고 다른 세포를 흡수하면서 환경에 더 잘 적응, 진화해 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생이 적자생존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연선택”이라는 주장. 포유류의 세포가 단순히 원시 세균에서 유래된 자손이 아니라 사실상 여러 다른 세균류의 혼합물이라는 사실, 초기 진화에서 종 간의 융합에 관한 사례를 다양하게 거론하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넘어 환경친화 또는 공생의 철학까지 짚어 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존재한 미생물에 대한 연구서인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증보판 정도로 보면 된다. 저자들은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의 혼합물이라고 본다. 미생물이 지구 시스템을 소유하고 경영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 시스템의 한 부분일 뿐.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다른 생물 종의 운명과 맞물려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고 해서 이 법칙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생태계가 처한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도 준다.

| 책 뒷표지 글 |
꿈에도 생각지 못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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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있는 물체를 그토록 다르게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 해답은 과학적이면서 역사적이다. 생명은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자신만의 역사이다. 매일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이라는 존재는 태어나기 약 9개월 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보다 깊숙이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40억 년 훨씬 전부터 계승되어 온 생물의 놀라운 기원에서, 초기 지구의 가공할 만한 혼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생물의 풍부한 다양성과 진화의 충일에 대해 생각하고, 범 지구적 시스템과 모든 생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에 의해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공상소설보다 더 기이한 생물계의 실체와 전혀 뜻밖의 새로운 철학을 밝힐 수 있는 지적 힘을 결합시킨다.

책은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야기시키고 있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지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전세계의 생태계와 더불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절실한 생물 세계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하게 될 것이다.

| 지은이 소개 |
+ 린 마굴리스 (Lynn Margulis, 본명: 린 알렉산더)
MIT 생물학과의 저명한 교수로 세포 생물학과 미생물의 진화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국의 지구생물학과 화학 진화에 관한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NASA의 지구생물학에 관한 실험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녀는 이 분야에서의 지칠 줄 모르는 연구 결과로 19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제 학술 강연, 100종이 넘는 논문과 더불어 10권이 넘는 책을 썼다.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풀이 하자면,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박테리아(Cyano Bacteria, 시아노 박테리아)였고 진핵 세포(Eukryotic Cell)로 들어가서 공생적 관계를 이루다가 지금의 세포로 정착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코스모스>로 잘 알려진 칼 세이건의 첫번째 아내였으며,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도 공헌한 바 크다.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공저로 책들을 펴냈는데, <진핵 세포로의 진화>, <공생과 세포 진화> 등의 저술이 있다.

+ 도리언 세이건 (Dorion Sagan)
사이언스라이터 사의 공동 경영자로 <생물권, 행성 지구의 변신>의 저자이다. 린 마굴리스와의 공저로 <소우주>, <성의 기원>, <미생물의 낙원>, <수수께끼의 춤 ; 인류의 성 진화에 관하여> 등이 있다.

+ 마굴리스의 공생론 관련 번역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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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코스모스 섹스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공생자 행성

- 옮긴이
+ 황현숙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했다. 과학세대의 기획 위원으로 과학도서의 기획 및 번역에 참여했다. 옮긴책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생명의 다양성>, <생명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 차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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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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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물계의 다채로운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의 특성과 생명체들간의 관계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들의 전작인 ‘마이크로 코스모스(1987, 범양사)’를 읽을 때 부터 느껴온 것이지만, 진화가 '경쟁'과 '배제'가 아니라 '공생'과 '협력'의 과정이라는 저자들의 견해는 다윈의 진화론과는 달리 새롭다. '진화론' 하면 다윈이 떠오르고, '자연 선택', '생존 경쟁', '적자 생존', '도태' 등과 같은 살벌한 단어들이 연상되기 마련이었다. 필자의 지난 글들에 다위니즘에 입각한 진화론자들을 안 좋게 표현한 것도 그들의 진화론이 내 신앙의 교리와 정면으로 맞선다고 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생명 탄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과학적 타당성 문제도 큰 문제이지만, 그들이 믿고 추앙하는 다위니즘에 입각한 진화론의 저변에 깔린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때문에 그들의 이론에 좋지 않은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다위니즘의 영향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안 좋은 일이 많았으며, 지금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굳이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 제국주의
  •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 히틀러의 민족우월주의
  • 일본 군국주의
  • 자본주의
    (필자가 보기엔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라는 괴물의 변형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근대의 제국주의가 무력적인 힘으로 자본과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라면, 자본주의는 자본의 힘으로 자본과 노동력을 갈취하고 있다는 차이점 뿐인 걸로 비춰진다.)

위와 같은 예를 들면 기독교가 저질러온 전쟁사 얘기해대며, ‘기독교사=전쟁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 남의 말에 눈 감고, 귀 막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려는 청맹과니와 무슨 대화가 될까! 그저 어서 심안을 뜨길 기원해줄 뿐!

※ 글이 너저분해질 것 같아서 위의‘주의(-ism)’들이 왜 진화론의 악영향으로 나타난 것들인지 역사적 배경 설명은 생략한다. 알고 싶은 분들은 검색을 잘해보시면 저‘주의(-ism)’들이 생겨난 배경에 대한 글들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너스레 |
폼생폼사’라는 말이 있다. '폼나게 살고 폼나게 죽는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공생공사’라는 말도 있다. ‘공장에서 살고 공장에서 죽는다’라고 해석한 분은 안 계시겠죠? ^_^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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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힘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자본을 왜곡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가진 자들과 그런 부류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로 인해 물질문명,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져가는 세상. 나 혼자만,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차려 입고, 좋은 차 몰며, 좋은 집에 살면 그게 폼생폼사일까? 폼나게 살다 폼나게 죽는다는 건 밖으로 비춰지는 면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말 폼나게 살다 폼나게 죽고 싶으면 당신의 내면이 외면 만큼 폼나야 하지 않을까?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 살다 가신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22:39)’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공생공사’를 진정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더불어 사는 삶을 산 사람이 진정 ‘폼생폼사’한 삶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웃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이웃에 대한 사랑(인류애)을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설파하신 여러 말씀 중 하느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 이것 두 가지만 잘 실천하며 살아도 바로 지금 이 세상이 천국이 될텐데, 허구헌 날 말로만, 생각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기 좋아한다. 폼나게 살다가 폼나게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라!’ 그러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틀림없이 당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멋진 사람이었어’라고 얘기할 것이다.

느닷없이 故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말씀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단언하건데, 개미들의 ‘공생공사’를 인류가 반만 따라해도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나진 않았을 것이다, 너도 나도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자!

나이가 이 만큼 되니 이제사 참된 삶의 의미가 뭔지, 내 꼬라지의 실체가 뭔지, 종교의 실제적 기능이 뭔지, 안개 저 너머에서 가물가물거리며 내게 손짓하던 실체가 뭐였는지 알 것다. 참삶도, 태어나기 전의 나의 실체도, 종교라 호명하는 것의 기능도, 안개 너머의 실체도, 그 전부가 사실은 하나의 다른 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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